북한에도 우리처 럼「설」, 즉 신정과 구정이 모두 있다. 북한에서는 신정을 「설」이라고 하고 구정을 「음력설」이라고 한다. 2002년까지 북한은 「설」을 「음력설」보다 더 크게 쇠었으나, 김정일 지시에 따라 2003년부터 「음력설」을 기본「설」 명절로 쇠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원래 북한은 음력설을 쇠지 않았다. 김일성이 1967년 5월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나는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시를 내려 민속명절인 음력설, 단오, 한식, 추석 등을 다 폐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랬다가 1988년 이후 추석(1988년), 음력설(1989년)등을 부활시켰다.
북한 방송매체에서는 설날에 윷놀이, 썰매타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장기 등의 민속놀이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별식으로 떡국, 만두국, 설기떡, 찰떡, 절편, 수정과, 강정 등이 인기 있는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설날 모습은 일반 주민이 지내는 실제의 설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설날 음식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고향방문과 황금연휴를 만끽하기 위한 민족대이동의 귀성행렬도 없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차례와 세배를 올린 후 덕담을 주고받는 미풍양속은 북한당국이 선전차원에서 보도․방송하고 있으나, 일반 주민들의 풍습으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조상전래의 명절보다는 김일성, 김정일 생일, 정권 창건일, 당 창건일 등 사회주의 명절을 더 중요시하는 북한사회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6․25이후 설, 추석, 단오, 한식 등 민속명절이 공식적으로 사라졌었다.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고 해서 금지시켜왔으나 종상전래의 풍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특히 노인층과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제사와 성묘 등이 행사가 암암리에 계속 되어왔다. 이러던 중 1989년에 음력설, 한식, 단오까지 민속명절로 공식화하여 휴무일로 정하였다. 그러나 1992년 이후로는 한식이 중국의 풍습이라는 이류로 민속명절 휴무일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북한은 원래 민속 명절을 금기시 하여서 중요하게 지내지 않았고, 그중에서도 한식은 설이나 추석에 비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남북대화 이후인 근래에 들어와서 민속 명절에 대해 많이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명절날 성묘를 하고 벌초를 하며 민속놀이를 즐기기도 한다고 한다.
단오는 설, 추석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최대명절로 꼽히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로는 창포물에 멀리를 감는 것과 그네뛰기, 씨름 등이 있다. 단오 행사는 북쪽으로 갈수록 성황을 이루고 남쪽으로 갈수록 비교적 행사가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단오절을 맞아 씨름, 그네뛰기 등 민속행사와 함께 액막이용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쑥떡, 수리취떡, 설기떡 등 특색 있는 음식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최근 들어 식량사정이 악화되면서 쑥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 단오절 음식의 전부라고 한다. 예전에는 단오를 큰 명절로 지켰지만 최근에는 단오가 언제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 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오랫동안 전통명절을 지키는 것을 금지했던 영향으로 단오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북한에서는 지난 1989년부터 단오절을 「휴무일」로 지정해 명절로 지내고 있다.
음력 8월 15일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다. 북한에서 추석은 김일성․김정일 생일 등에 밀려 퇴색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민들은 추석날 부모의 묘를 돌보고 제사도 지낸다.
1960년대 말부터 김일성의 유일영도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봉건유습 타파와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외치면서 조상숭배와 민간풍속 대부분을 봉건적 잔재로 매도했지만, 추석날 성묘 문화는 어느 정도 묵인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1967년 5월 폐지했던 추석명절을 1988년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 하루 휴무하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추석날 아침 일찍 준비한 음식과 낫등을 가지고 조상의 묘를 찾아 떠난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차례를 먼저 지내지만, 북한에서는 차례 없이 곧바로 성묘를 간다. 묘에 도착하면 가져온 낫 등으로 벌초를 하고 상돌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술을 부은 후 묵례를 한다.
북한에서는 절하는 문화가 오래 전에 사라졌으며, 1980년대 이후 조금씩 부활되고 있으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묵례 후에는 빈 접시에 술, 밥, 국, 반찬 등을 조금씩 담아 묘 주변 땅속에 묻은 뒤 온 가족이 상돌 주위에 줄러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북한당국은 평양시 교외의 공동묘지에 가는 시민들을 위해 추석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궤도전차, 버스, 지하철 등을 운행하고 묘지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에는 별도로 전용 교통편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교통편이 열악한 지방에서는 걸어서 묘지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평양시의 주요 공동묘지는 중화군, 룡성구역, 순안구역 등에 있으며 지방의 공동묘지는 교통편 등이 감안돼 시나 군내 구역 안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1~4시간 정도 걸으면 도달할 수 있다.
명절 특별 물자 공급이 없어 제수 물자도 먹을 것도 없는 명절이지만, 농촌 및 일부 도시민들은 차례를 지내는 풍습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또한 최근에는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정도는 경계를 넘어 성묘를 하는 것도 허락하고 있다.
명절날 북한의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명절 음식을 먹는 모습이나 민속놀이를 즐기는 풍습 등을 방영하고 있어 우리의 명절 모습과 비슷한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추석날 성묘를 하지 않으면 죄를 짓고 벌을 받는다면서 어떻게든 거르지 않았던 성묘 풍속도가 1990년대 중반 들어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평양에 산소를 둔 지방 주민들은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기가 어려워 아예 성묘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편, 북한 언론들은 추석날 주민들이 강강술래, 씨름대회, 활쏘기 대회, 농악 등의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이들 모습 역시 일부 주민들을 동원한 행사용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족이나 이웃들과 어울려 비교적 차분하게 보낸다.